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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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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사랑일까 THE ROMANTIC MOVEMENT

  • 알랭 드 보통 지음

  • 공경희 옮김

  • 은행나무

 

 

 

 

 

 

서장

객관적이 눈으로 자신을 들여다보면 자기가 측은해지고, 자기연민이 고개를 드는 법이다. 그럴 때에는 이런 생각이 든다. '모르는는 사람이라도 이런 경우라면 안쓰럽게 느끼겠구나.' 자신의 불행은 자기연민을 더욱 부추기고, 슬픔이 슬픔을 부른다. 그 말에 각인된 경멸적인 관념은, 고민을 과장하고 진실한 동기없이 동정을 남발하기 쉬운 역사적인 성향으로 연결된다. 자기연민에 빠지면 평범한 실연을 당해도 스스로를 비극의 주인공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럴 때 사람들은 목이 아프다며 스카프를 친친 두르고, 사방에 약을 벌여놓고, 폐렴이라도 걸린 듯 콧물을 흘린다.

예측가능성#

위대한 러시아 심리학자 파블로프는 덜 알려진 실험을 통해, 반응하도록 훈련하던 신호에 충분한 혼란을 주면 개가 몸을 떨고 대소변을 보면서 신경증 상태에 빠질 수 있음을 밝혔다. 종을 울리고 먹이를 주다가 갑자기 종을 울리고 빈 접시를 주면, 개는 몇 번 같은 경험을 한 끝에 빈 접시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종이 울리고 나서 때로는 먹이가 나오고 때로는 안 나오는 식으로 불규칙하게 진행되면, 개는 이제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지 알 수 없게 되고, 음식과 빈 접시의 연관성을 파악할 수 없어 혼란에 빠진다. 종소리가 때로는 이것을 의미하다가 때로는 다른 것을 의미하면 (늘 예상했던 것과 반대로 되지만) 개는 천천히 광견 상태에 빠져들었다.

사랑의 영속성(1)#

위니캇과 피아제의 이론을 앨리스와 에릭에게 적용하는 것은 지나친 일일지도 모르지만, 영속성이라는 문제는 공통된다. 여기서는 대상 영속성이 아닌 사랑의 영속성 문제다. 이 사랑의 영속성이란 무엇인가? 상대가 당장 관심의 징표나 신호를 보내지 않아도 사랑이 지속되리라는 믿음, 상대가 밀라노나 빈에서 주말을 보내더라도 다른 정인(情人)과 카푸치노를 마시거나 초콜릿케이크를 먹지 않으리라는 믿음, 침묵은 단순한 침묵일뿐 사랑의 종말을 암시하는게 아니라는 믿음.

앨리스는 에릭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어머니에 대한 아기의 믿음과 비슷한 진리가 필요했다. 당장 보이지 않고 증거가 없어도 매달릴 수 있는 무엇인가가.

사랑의 영속성(2)#

편집증은 사랑이라는 감정에 따르는, 극히 자연스런 현상일 것이다. 상대를 높이 평가하니 내가 버려질 가능성이 점점 커질박에. 하지만 일단 재앙의 시나리오에 끌려들면 사랑은 상처를 악화시킬 뿐이다.

사랑의 영속성(3)#

그녀는 자신의 분노를 오랫동안 남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 비난의 화살은 그녀 자신에게 돌아왓다. '자기연민에 빠진 어리광쟁이야. 그는 너같이 따분한 처녀를 달고가는 것보다 더 나은 일이 많은 사람이라구.'

그녀는 한동안 마음을 추스르고, 의자에 앉아서, 마음을 다잡으며 비스킷을 먹고 TV를 응시했다. 그러다가 견딜 수 없어져서, TV를 끄고 과자 봉지를 쓰레기통에 홱 던졌다. 그리고 침실로 달려가서 쿠션 더미에 몸을 던지고 다섯 살배기처럼 울다가 잠들었다.

편집증세는 애처로운 5막짜리 희비극이었다.

 

  1. 앨리스는 에릭을 사랑했다.
  2. 그 남자는 그녀를 초대하지 않아, 그녀로 하여금 사랑에 대한 의구심을 품게 했다.
  3. 하지만 실제로 합당하게 불평할 만한 증거가 충분하지 않았다. 그녀는 증오와 실망을 표현하지 못하고……
  4. 그녀는 조용히 에릭을 증오하기 시작했다.
  5. 그녀는 그 남자를 비난하는 자신을 참을 수 없어서, 자신을 미워하면서 침대로 갔다.

 

당신은 날 많이 사랑하지 않아라는 억압된 두려움과 내가 말도 안되는 걱정으로 당신을 괴롭히면 안되는데라는 타고난 심리적 규범이 폭발적으로 뒤섞여 상호 작용하는 것이 애인의 편집증을 낳는 마법이다.

- 그런데 아무리 이성을 찾고 성숙해지려 노력해도, 나는 조금씩 미쳐가…….

권력과 007#

다른 영역에서와는 달리, 사랑에서는 상대에게 아무 의도도 없고, 바라는 것도 구하는 것도 없는 사람이 강자다. 사랑의 목표는 소통과 이해이기 때문에, 화제를 바꿔서 대화를 막거나 두 시간 후에나 전화를 걸어주는 사람이, 힘없고 더 의존적이고 바라는게 많은 사람에게 힘 들이지 않고 권력을 행사한다.

왜 사랑받는가?#

나이트클럽과 축구단에 관련해서는 배타적인, 집단의 압박이 있으므로 이 대화는 중요한 의미를 띠었다. 무관심한 일이나 불안감을 털어놓을 수 있다는 것은 관습을 깨는 일이고, 사회가 당연시하는 것들에 대해 불편하다고 인정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하면서 공통된 정체서ㅕㅇ을 기반으로 동지애를 굳힐 수 있었다.

독서의 문제#

그녀는 '나를 찾고' 싶었다. 자기 이야기여야 했고, 복잡하고 설령 문법에 어긋난 문장이라 하더라도 그런 야심이 담겨 있어야 햇다. 그녀는 자신이 왜 어떤 것을 느끼는지, 왜 사랑하는지, 왜 미워하는지, 왜 좌절하는지, 왜 행복한지 더 잘 알고 싶엇다. 여자란 무엇이며 남자란 무엇인지, 두 사람이 어떻게 소통할 수 있는지, 왜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지 알고 싶었다. 책에 등장하는 인무들이 그녀의 경험을 조명하는 이야기, 분주한 일상생활 가운데에서 사랑과 의미를 추구하는 이야기, 그리고 어쨌거나 그들의 운명이 꽤 행복하게 끝나는 이야기를 읽고싶었다.

유쾌증#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누군가를 같이 싫어한다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거리낌 없이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공모 행위다. 두 사람이 모임에서 빠져나와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한다. "그 여자, 이상하지 않아?" "그 남자, 진짜 차갑지 않니?" "그 여자, 가짜 속눈썹 붙인 거 봤어?" "그거 부분 가발이지?" "여자가 친정에서 유산을 받았다지?" 그러므로 에릭이 앨리의 말에 맞장구치지 않은 것은 에릭의 충심이 변했따는 신호였다. '난 당신보다는 새로 사귄 데이지와 밥을 신뢰하거든요. 나는 다른 사람들을 신뢰하니 당신이랑 뒷말하지 않겠어요'라는 의미였다.

자기 자신에 대한 휴가#

왜 실제 여행 겨험은 그토록 기대와 다른지, 섬과 호텔이 훌륭함에도 왜 계속 혼란스러운지 의아한 까닭은, 그녀가 짐을 꾸릴 때 한 가지 중요한 것을 두고 오는 걸 잊었기 때문일 것이다. 선탠로션이며 자기계발 책, 비키니 수영보과 선글라스를 싸면서, 자기 자신까지 챙겨왔기 때문이었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게 하나? (1)#

비트겐슈타인(오스트리아 태생인 영국 철학자 - 옮긴이)의 주장을 빌리면, 타인들이 우리를 이해하는 폭이 우리 세계의 폭이 된다. 우리는 상대가 인식하는 범위안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 - 그들이 우리의 농담을 이해하면 우리는 재미난 사람이 되고, 그들의 지성에 의해 우리는 지성 있는 사람이 된다. 그들의 너그러움이 우리는 너그럽게 하고, 그들의 모순이 우리는 모순되게 한다. 개성이란 읽는 이와 쓰는 이 양쪽이 다 필요한 언어와 같다. 일곱 살 아이에게 셰익스피어 작품은 말도 안 되는 허섭스레기이며, 만약 그의 작품이 일곱 살 아이들에게만 읽힌다면 셰익스피어는 그 아이들이 이해하는 수준에서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 - 마찬가지로 앨리스의 가능성도 애인이 공감해주는 한도에서만 뻗어나갈 수 있다.

(...중략...)

관계의 기반은 상대방의 특성이 아니라, 그런 특성이 우리의 자아상에 미치는 영향에 있다 - 우리에게 적당한 자화상을 반사해주는 상대방의 능력에 기초해서. 에릭은 앨리스에게 어떻게 느끼게 하는가? 어떻게 그것을 알려주는가? 모든 게 머릿속 생각일 뿐인지 실제로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오래전부터 그 남자와 있으면 가치 없는 사람이 된 기분을 느꼇다. 그 남자와 함께 있는 앨리스는 돈을 함부로 쓰고, 지성적이지 않고, 감정적인 데 매달리고, 타인을 귀찮게 하는 의타심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게 하나? (2)#

앨리스가 에릭과 있을 때 느끼는 자기 개념은 그 남자의 대화 성향에 따라 한정되었다. 그 남자가 즐겁게 엔화와 BMW사의 차세대 엔진 성능에 대해 말하면, 그녀는 자신이 말하고 싶었던 것들이 대화의 영역 밖으로 밀려나 버렸음을 재빨리 포착했다. 그 남자는 그녀의 말을 막지 않았지만, 자기 이야기를 함으로써 그녀에게 말해봤자 쇠귀에 경 읽기가 되리라는 것을 암시했다.

따라서 앨리스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있으면 흥미로운 인물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스스로 아주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고 결론지었다. 에릭과 같이 앉아 저녁을 먹을 때면, 적당한 상대만 있다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으리라는 자신감을 잃고, 할 말이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었다 -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뿐 아니라 우리가 말하고 싶은 것, 말하고 싶어할 수 있는 것까지 타인이 결정한다는 증거다.

오독#

정서적으로 거리감이 있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가정하자. 그는 전화에 응답도 없고, 약한 면을 드러내지도 않고 가치있는 일을 함께 하지도 않는다. 무슨 문제인가. 이런 면모는 사소한 부분이어서 그의 성격을 구성하는 핵심요소 - 곧 감수성이 예민한 눈빛, 복잡한 상점가에서 손을 잡아줄 때의 느낌, 영화를 보면서 우는 모습, 우리가 너무도 공감하는 어린 시절의 상처…… - 가 아니다.

앨리스는 항상 에릭의 성격을 독창적으로, 어쩌면 빗나간 방법으로 읽었다. 상대적으로 사소한 면을 그 남자의 본질이라고 판단했다. 이렇게 빙산에 접근하는 방식 때문에 그녀는 그 남자가 한두 번만 재미있게 굴면, 그를 숨겨진 해학적 기지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믿어버렸다.

그러나 이제 그 남자가 좀더 자주 재미있는 사람이나 ,감수성이 예민하거나 친절한 사람이 되지 못하게 막는 장애물이 과연 진짜 장애물인가 하는 의문이 생겻다. 그러한 것들은 에릭의 진정한 본모습이 아니라, 앨리스가 자기 입맛에 맞게 지금까지 상상한 모습이라고 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누가 노력하는가?#

질투심이 없는 것은 감탄스러운 면일 수도 있다. 적어도 앨리스는 의처증 환자에게 고통 받는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또한 노골적인 모욕으로 읽힐 수도 있었다. 에릭은 사랑을 주장하고 지킬 생각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질투심을 경험하려면 아래 두가지를 받아들여야 한다.

 

첫째 : 다른 사람에게 간절히 마음을 쓴다는 점.

둘째 : (이것은 자존심이 개입되는 부분이다) 그 사람이 이제 자신에게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다는 점.

 

 그 남자가 질투하지 않는 것이 앨리스로서는 기쁘지 않았다면, 그 까닭은 그가 고집스레 첫 번째 항목을 인정하지 않아서 그러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두 번째 항목의 시나리오가 펼쳐질 길을 여는데 이바지했다.

선언#

그런데 지금 여기서 에릭이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한달 전에 이 말을 들었다면 앨리스는 기뻐서 뛰었곘지만, 이제 그 남자의 눈앞에는 그 말을 한 사람 앞에서 그보다 더 냉소적일 수 없는 사람이 있을 뿐이었다. 냉소적인 사람은 너무 많이 바라고 너무 오래 기다린 사람을 뜻했다. 그의 사랑 고백은, 앞으로 혼자 밤을 보내야 하고 또 신경질을 부릴 대상이 없어진다는 걸 깨달은 남성의 반사적인 반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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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edited on 07/15/2008 22:56 by 룬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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